시편 57:1-11 "마음을 정했습니다, 찬양을 부르겠습니다."

시편 57:1-11 "마음을 정했습니다, 찬양을 부르겠습니다."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나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말씀을 사모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담아서 만든 찬양을 부를 때 놀라운 일이 생겼던 두가지 장면을 소개하겠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주위 세 나라가 연합을 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전쟁터로 나가는 군대의 제일 앞에 찬양을 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특이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찬양하는 사람들이 노래를 시작하자, 갑자기 하나님의 영이 적국의 세 연합군들에 임하여 자기들끼리 막 죽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가 앞에 도착하자 죽고 도망하여 피도 하나 안 묻히고 승리하게 됩니다.
놀라운 일은 여호사밧 군대가 “하나님 이기게 해 주십시오”라고 찬양을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저 세 나라의 연합군을 이길 순 없다. 이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 마음으로 찬양을 했고, 찬양을 하는 순간 은혜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어떻게 맨앞에 서서 찬양하면서 전쟁터에 나아갈수 있습니까?
 은혜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장면은,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 주는데 그 여종으로 돈을 벌던 여종의 주인이 돈벌이가 끊기니까 바울과 실라를 때리고 감옥에 가둡니다. 그렇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찬양을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양을 하니까 지진이 나고 감옥문이 열리고 수갑도 풀리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도 찬양을 하니까 지진이 나고 감옥문이 열리고 수갑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자살하려고 하는 간수를 살리려고 감옥에서 안 나갑니다.
감옥을 나가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은혜에 사로잡혀 한 영혼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라고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찬양의 노래로 찬양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감사로 차게 된다고 합니다. "
예수님을 믿게는 되었지만, 그 믿음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지만, 감사로 찬양을 하고, 찬양이 감사로 채워지면 오늘이라고 하는 하루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하루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시편 57편 제목이 ‘환난 때에 찬양과 신뢰’ 입니다.
사울을 피하여 동굴로 도망했을 때 쓴 시가 이 시입니다.
저는 다윗이 동굴에서 비참한 현실 속에서 그냥 최선을 다하여 눈물로 찬양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편 57편 1절을 보면, ‘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로 피합니다. 이 재난 지나기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다윗은 지금 동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노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윗은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노래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에 잠기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원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영광 돌리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의 힘입어, 사랑의 힘입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다윗은 어려운 시간 속에 “하나님을 노래하겠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찬양을 하겠습니다”라고 결정합니다.
다윗은 찬양을 부를 수 있는 상황이라 찬양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을 부를 수 없을 때도 찬양을 부를 수 있고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는 왜 노래를 불러야하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내 영혼아, 깨워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워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고난과 어려움이라고 하는 시간들이 우리를 잠들게 합니다.
그런데 찬양을 하고 노래를 하면 예수님의 자녀로서 깨어난다고 합니다.
원래는 새벽에 나를 깨우는 것인데 다윗은 ‘내가 새벽을 깨우겠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내가 고난과 어려움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하루로 내가 살아내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힘들고 어렵지만 은혜로 살아내겠다는 뜻입니다. 그게 내가 새벽을 깨우겠다는 뜻입니다. 

3절에 보면, ‘하늘에서 주님의 사랑과 진실을 보내시어,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또 다윗은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사랑과 진실을 보내 주시는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 하나 없고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 밖에 없는데 왜 사울은 나를 죽이려고 할까?
하나님 무엇을 하고 계신가? 라고 생각했겠지만,
다윗은 그분은 나에게 여전히 사랑과 진실을 보내 주신다는 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그는 그 시간을 견디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노래 부르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오히려 그들이 그 함정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라고 하는데 아직 다윗은 쫓기는 신세입니다. 여전히 사울은 기세 등등하게 자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역전시키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다윗은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핵심본문 10절~ 11절을 보면, ‘주님의 한결 같은 그 사랑, 너무 높아서 하늘에 이르고, 주님의 진실하심, 구름에까지 닿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 온 땅 위에 떨치십시오’
다윗이 하나님이 어떤 신분인지를 기억했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 사랑과 진실을 보내 주시는 분, 반드시 의인을 안아 주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
그래서 그는 동굴에서 마음을 결정합니다. 내가 노래를 불러야겠다.
이때 부른 노래가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높아서 하늘에 닿고 너무 깊어서 바다에 이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게 됩니다.
이 내용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해는 되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높은 지 하늘에 닿고, 얼마나 깊은 지 바다에 닿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으로 증명된 하나님의 그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상황과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그 사랑을 찬양합시다.
그때마다 우리가 은혜로 깨어나고 은혜에 사로잡히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