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누가복음 10:25-35)
우리에게 평화의 왕이 오셨습니다.
왕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의 왕이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잘 알려진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강도 만나 거의 죽어가는 유대인에게 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제사장, 두 번째 레위 사람, 세 번째 사마리아 사람.
바쁘고, 시체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하는 규정, 강도들의 재습격 등등,
그냥 지나쳐야하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사장, 레위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은 크게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특이하게, 유대인인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강도 만나 거의 죽어가는 같은 민족인 유대인을 그냥 지나쳤지만,
유대인과 원수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에 데려가서 자신의 재정도 쓰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도 그 사람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기억하고 싶은 한 가지는
우리 모두가 제사장과 레위사람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 중에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처럼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기 힘드니까, 그 율법을 자기들에게 맞게 해석해서 행동했습니다.
당시 율법 학자,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실천할 수 없으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웃을 정해 놓고 행동 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옳게 보이고 싶어서 당당하게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찾아왔던 율법 학자, 제사장, 레위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죄인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의 사랑의 은혜로 그런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기준으로 살아가게 된다’ 라는 뜻입니다.
33절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은 자,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본문에서 측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그런 존재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부활의 은혜로,
원수도 사랑하는 측은한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우리가 만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율법 교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
우리가 만든 대본에는 아마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으로 정해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친 사마리아 사람을 사랑하고 보살펴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강도 만난 사람을 유대인으로 정하십니다.
그리고 도와준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으로 정하셨어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강도 만난 사람에게 율법학자가 감정이입 되게 만드신 겁니다.
율법 학자가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이 되어,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 되는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도움 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너는 죄인이고, 길을 잃었고, 망해가고 있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너야” 라고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도움을 주는 주체라면 이웃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면 이웃을 제한할 수가 없습니다.
너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고 누구든 와서 네 이웃이 되어 주기를 바래야 한다고 일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친구,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쌍히 여김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누군가를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되었고, 우리도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웃은 누구일까요?
1.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웃은 내가 하루하루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는 하루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2. 목장에 목원들 입니다.
목장이라는 예배모임은 그냥 밥 먹고, 교제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더 알게 되고 그 안에서 성장하게 하는 것이 우리 목장의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우리를 부르신 이곳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고자 할 때
그 사랑의 관계속으로 다른 사람들도 들어오게 된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목장이 그런 목장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살고 있는 지역에 이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있는 것이 우연히 아니고,
건물을 빌려서 교회로 사용하는 것도 우연히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마음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분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섬기는 교회,
나아가서 멜번에서 선한 사마리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 선교지 이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선교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선교지는 단지 재정을 보내는 대상이 아닙니다. 기도만 하는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나누는 우리의 친구이자 우리의 이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담없는 교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구원자 되어 주셨고 우리의 목자 되어 주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그 분이 그 분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보내어, 우리에게 만나게 하시려는 우리의 이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웃이 되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은혜에 힘입어, 그 은혜를 소망하고, 그 은혜를 붙잡아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 주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이번 한 주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 주는 우리들의 삶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