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1-35 “교만을 조심하라”

“교만을 조심하라"

우리에게 평화의 왕이 오셨습니다.

왕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의 왕이 오셨습니다.

기드온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두려웠지만 아버지가 만들었던 바알 우상 재단을 없애는 것이었는데,
본문 8장을 보면, 기드온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우상처럼 여겼습니다. 기드온은 주님께서 미디안을 우리 손에 넘겨 주셨다고 고백했던 자였습니다.
이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주 미약한 300명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거라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승리를 맛본 시점부터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승리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그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교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세상이 말하는 교만과는 조금 다릅니다.
세상이 말하는 교만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높은 우월감등의 것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던 기드온이
어느 순간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내용에서 기드온이 무너지고 있는 네가지 모습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1. 교만의 위협에 빠진 기드온은 자신의 동족을 죽입니다.

미디안의 왕들을 쫓아갑니다 ➡ 숙곳, 브누엘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빵을 달라라고 부탁합니다 ➡ 그곳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들로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 기드온은 승리하고 돌아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합니다 ➡ 결국 기드온은 승리를 하고 숙곳, 브누엘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입니다.
숙곳, 브누엘은 이스라엘 지역입니다. 같은 나라 민족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그들이 빵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였습니다.
기드온은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왜 동족을 죽였을까요?
15절을 보면 “나를 조롱하였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조롱한 적 없습니다.
새번역 본문에는 약간 의역되어 ‘비아냥 거렸다’라고 해석되고 있지만
개혁 계정, 영어 성경이나 헬라 원문에는 ‘말하였다’ 라고 적여 있습니다.
숙곳, 브누엘 사람들이 분명히 잘한 건 아니지만 기드온을 조롱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미디안을 두려워해서 도와주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자기를 도와주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
‘자신을 조롱했다’라고 해석했고, 자기 감정대로 그들을 죽였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바울은, 육체를 따르는 일과 성령님을 따른 일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행실들
➡ 원수 맺음, 다툼, 시기, 분냄, 분쟁, 질투.
주님의 주인 되심을 믿지 않고, 내가 맞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생깁니다.


2. 기드온은 개인적인 복수를 합니다.

18, 19절을 보면, 미디안 왕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 자기 형제들을 죽였기 때문에 기드온은 지친 3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추격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사기 7장 2절을 보면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여기서 네가 거느린 군대는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너와 함께하는 군대라고 직역됩니다.
그리고 사사기 8장 5절에서 보면 "나를 따르는 군인들이 지쳤으니” 라고 적혀 있는데,
이 부분을 히브리어 성경에서 직역하면 ‘내 발 아래에 있는 군인들’ 이라고 직역됩니다.
내가 승리했다라고 하는 생각이,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고,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나와 함께하게 하신 군인들을,
내 발 아래에 있는 군인들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작은 용사했던 기드온이 어느덧 내가 주인되어 내 마음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이었는데
내가 승리했다는 그 생각이, 결국 하나님 없이 살아 가는 불행한 삶으로 인도되어졌던 것입니다.


3.기드온은 왕이 받아야 할 영예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기드온은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겁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겁니다.
오직 주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과는 어긋나는 행동들을 합니다.
왕의 자리를 거절했지만, 교만으로 인하여 왕이 받아야 할 영예를 요구한 것입니다.
①전쟁에서 승리해서 얻게 된 전리품 중에 금귀걸이로 에봇을 만듭니다.
② 금으로 만든 에봇을 자기가 사는 오브라 성읍에 보관 하도록 합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성막에서 입는 옷입니다.
그리고, 에봇은 당시 실로라고 하는 곳에 있어야 했습니다.
실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으로, 사람들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곳에 있는 대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곳이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금으로 만든 에봇을 자기가 사는 오브라 성읍에 보관해 두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우상으로 음란하게 섬기게 했습니다.


4. 기드온은 왕의 영예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왕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친아들이 70명이나 되었는데 이건 주변 왕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첩까지 두고, 첩으로부터 낳은 아들 이름을 ‘나의 아버지가 왕이다’라는 뜻의 아비멜렉이라고 이름을 짓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왕이라고 고백했지만, 자기가 왕인 것처럼 살아갔는데,
이런 기드온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나의 주님이시라 고백하지만, 내가 내 삶의 주인처럼 살아갈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드온과 같은 결말을 갖지 않으려면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그 방법은 십자가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으로 우리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마음에 거하시고 우리 마음에 주인 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기드온이 마주한 결말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드온에게 없는 우리의 엄청난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셨지만, 가장 낮아지셨습니다.
섬김 받으셔야 하는 분이셨지만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고,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7절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 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이라.’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행복하다라는 뜻입니다.
그 행복을 누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도 그 은혜를 나타내 보일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는 내 삶에 내가 주인 되는 그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갈 때 그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하나님은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 되어 주셨습니다. 언제나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